스웨덴 셰핑(Köping)의 해스텐스(Hästens) 공장에는 흔히 생각하는 ‘공장의 소리’가 없다. 컨베이어 벨트의 굉음도, 로봇 손이 빠르게 조립하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없다. 길이 30㎝가 넘는 바늘이 두툼한 매트리스를 관통할 때 나는 ‘툭, 툭’ 하는 소리 조차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내부를 채우는 건 양모와 소나무가 뿜어내는 자연의 냄새.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침대를 만드는 이 곳은 단순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방식을 지켜내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휴식이자 그 다음날을 살아내는 에너지 창고 역할도 해내는 ‘잠’을 어떻게하면 가장 아름답게 창조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설계하는 공간이었다.
해스텐스 침대를 이루는 말총과 순면, 양모와 아마 섬유.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셰핑에 위치한 공장 입구부터 뜻밖이었다.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 나라에서 온 손님이 오면 그 나라 국기를 건다. 오너의 뜻이다.” 안내를 맡은 본사 홍보 총괄의 설명이었다.
디지털 화면으로 접하는 건 쉬워도, 타국에서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보는 건 드문 일이다. 공장 안 옛 식당에도, 공장 입구에도, 공장 안에도 태극기는 이 곳 저곳에 걸려있었다. 현 CEO이자 5대손인 얀 리데(Jan Ryde)는 자신의 저서 ‘비즈니스가 사랑일 때(When Business Is Love)’를 통해 ‘사랑’을 강조한다고 하는 데 잠도, 일도, 태극기도,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벽면 한쪽엔 오래전 예테보리 매장을 다녀간 고객들이 보낸 손편지가, 다른 한쪽엔 이 침대를 직접 구매한 전 세계 유명인들의 사진이 이름표 없이 걸려 있었다. 국내 팝 스타부터 스포츠 스타, 세계적인 IT 경영가,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비했다. “협찬이 아니라 본인 돈으로 산 분들이라 이름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잠은 유명하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해스텐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초기 공방 사진.
◇안장 장인의 손에서 왕실의 침대로
해스텐스라는 이름은 스웨덴어로 ‘말의(hästens)’라는 뜻이다. 1852년 창업자 페르 아돌프 얀손(Pehr Adolf Janson)은 마스터 안장 장인이었다. 당시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고, 수십만 명이 신대륙으로 떠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얀손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떠나지 말고 한 가지 기술을 완전히 익혀라. 그러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고 했다. 스웨덴 국왕이 직접 서명한 마스터 안장 장인 자격을 얻으려면 안장뿐 아니라 침대 제작까지 익혀야 했다. 안장의 속을 채우던 말총이 침대의 속을 채우게 된 연원이다.
2대 페르 투레 얀손의 시대에 자동차가 등장하며 말을 타는 사람이 줄자, 공방은 침대로 축을 옮겼다. 3대 다비드(David)는 1917년 한여름 밤 축제(Midsommar) 전야에 사촌이 그려준 말 모양 로고를 채택했고, 1924년 지금의 셰핑으로 공장을 옮겼다. 이유가 사뭇 낭만적이다. 그가 사랑에 빠진 아스트리드라는 여인이 이 지역 출신이어서 떠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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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창업 100주년이 되던 해에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해스텐스를 스웨덴 왕실 공식 납품업체(Royal Purveyor)로 지정했다. 4대 솔베이그와 잭 리데(Jack Ryde) 부부는 두 가지를 남겼다. 하나는 1950년대에 도입해 지금껏 유지하는 25년 보증이고, 또 하나는 1978년 스톡홀름 가구 박람회에 들고 나간 ‘블루 체크’다. 아보카도 그린과 브라운이 유행하던 거실에 들이닥친 하늘색 격자무늬에 사람들은 “가장 못생긴 침대”라고 했다. 커튼이나 식탁보에 쓰이던 스웨덴 전통 체크를 네 가지 톤의 파랑으로 크게 키운 그 무늬는 반세기 뒤 “스웨덴 국기보다 더 잘 알려진 패턴”이 됐다. 공장에서 들은 설명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블루 체크는 장식이 아니라 ‘좌표’다. 장인들은 격자의 선을 따라 어디에 바늘을 넣고 어디서 매듭을 지을지 가늠한다. “우리에겐 수학 공식 같은 것이다.”
스웨덴 셰핑에 자리한 해스텐스 드림 팩토리.
◇가업을 뛰쳐나간 경영학 교수, 그리고 ‘사랑’이라는 경영
5대 얀 리데는 원래 이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4대 시절 두 집안으로 갈린 지분 다툼으로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갔고, 명절마다 걸려오는 친척의 전화는 “너희를 파산시키겠다”는 협박이었다고 한다. 그는 가업을 등지고 린셰핑 대학에서 산업경제학을 가르치는 학자의 길을 갔다. 그러던 어느 여름, 집안을 돕기 위해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왔다가 침대라는 물건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1988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그는 셰핑으로 돌아와 경영을 맡았다.
리데의 혁신은 역설적이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바꿨지만, 침대를 만드는 방식은 한 가지도 바꾸지 않았다. 유럽에서만 팔리던 지역 브랜드를 45개국 250여 개 매장을 둔 글로벌 브랜드로 키웠고, 1990년대 수출을 시작하면서는 사내 공용어를 영어로 바꿨다. “회사 안에 두 개의 문화를 두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외 매장에 보낼 판매 직원은 먼저 셰핑 공장에서 여섯 달을 보내게 했다. 직급을 막론한 모든 직원에게 개인 코치를 붙였고, 모든 신입은 모델과 부서를 떠나 침대 한 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드는 견습 과정을 거친다. 스위스 프라이빗 뱅크 픽테(Picte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2012년 무렵을 “브랜드의 어두운 시절”로 불렀다. 외부에서 영입한 CEO 체제가 흔들리며 회사가 다시 한 번 벼랑에 섰고, 그 자신은 이혼을 겪고 있었다. 그는 복귀했고, 연 매출이 10억 크로나(약 1억 달러)를 넘으면 책을 쓰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 2023년 ‘비즈니스가 사랑일 때’를 펴냈다. 현재는 아들 넷 가운데 두 명이 회사에서 일하며 6대를 준비하고 있다.
공장 벽에 걸린 단체사진에는 유난히 머리가 하얀 얼굴이 많았다. “20년, 30년씩 일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사람을 평생 고용한다.” 생산 라인에는 할머니와 아들과 손자가, 아내의 여동생 부부와 딸이 같은 작업대 근처에서 일하고 있었다. 셰핑은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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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는 해스텐스에서 일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됐다.” 리데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경영서의 수사라기보다 이 작은 공장 공동체의 묘사에 가까웠다.
침대 제작에 쓰이는 소재와 함께한 장인들.
◇비밀의 방, 말총
투어는 ‘비밀의 방’이라 불리는 말총 보관실에서 시작됐다. 압축된 말총 덩어리들이 등급별로 쌓여 있었다. 사람 머리카락처럼 말총도 결이 다르다. 대표 제품인 ‘2000T’ 같은 스테디셀러에 들어가는 것, 상위 라인에 들어가는 더 길고 검은 것, 그리고 최상위 (그랜드) 비비더스(Vividus)에만 들어가는 가장 어두운 것. 헤스텐스는 말총을 전 세계에서 소싱하며 자연사한 말의 말꼬리를 윤리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공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꼬아서 건조하고, 고온 증기로 찜질하고, 세척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없애기 위해서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선정하는 카롤린스카 연구소 등 유럽 연구기관의 검증을 거쳤다.
해스텐스 2000T. 해스텐스의 상징이자 스테디 셀러 모델.
안내자가 말총 한 움큼을 쥐어 보라고 했다. 손바닥 위에서 통통 튀었다. 꼬아서 찜질한 뒤 다시 푼 말총은 가닥가닥이 작은 스프링처럼 굽어 있다. 가운데는 빨대처럼 비어 있다. “사람은 하룻밤에 0.5~1리터의 땀을 흘린다. 아침에 어깨가 축축하거나, 자다가 다리를 이불 밖으로 내놓는 이유다. 말총은 그 열과 습기를 빨아들여 몸을 마르게 유지한다.” 수만 가닥의 천연 마이크로 스프링이 몸의 굴곡을 따라 눌리면서, 동시에 몸을 받친다. “단단한 침대를 만드는 건 쉽다. 그냥 단단하게 만들면 된다. 부드러우면서 몸을 지탱하는 침대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
탑 매트리스 작업대에서는 두 사람이 면과 양모 위에 말총을 손으로 펴고 있었다. 말총은 곱슬거려 서로 얽히기 때문에 고르게 펴 놓으면 결국 한 장의 천처럼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손끝에 걸리는 작은 매듭이나 뭉친 덩어리는 모두 집어내 바닥에 버린다. “뭉친 덩어리 하나가 너무 딱딱해 잠의 느낌을 바꿀 수 있다.” 각 제작 단계가 마무리 될 때 장인이 직접 품질을 확인하며, 포장 전에도 전체 제품을 검수한다. 모든 공정이 곧 검사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하면 한 겹에 20분, 혼자면 30~40분. 탑 매트리스 한 장에는 보통 이런 겹이 다섯 번 쌓인다. 난연성이 뛰어난 양모가 베이스와 매트리스, 탑 매트리스에 모두 들어가며, 패브릭에도 소듐을 이용한 천연 난연 처리가 돼 있어 침대 전체가 뛰어난 난연성을 갖춘다.
작업대 위에 충전재를 펼쳐 매트리스를 만드는 장인들.
기계가 쓰이는 공정은 두 곳이었다. 하나는 쌓아 올린 다섯 겹을 물결무늬로 꿰매 고정하는 독일산 재봉 설비로, 30년쯤 전 주문이 밀리기 시작할 때 들였다. “품질을 타협한 것이 아니라 효율을 더한 것이다. 그전에는 이것도 손으로 했다.” 또 하나는 완성된 속을 겉감 안으로 밀어 넣는 설비였다. 그 외는 모두 손이다. 말총이 비치지 않도록 밝은 색 원단에는 양모를 한 겹 더 깔고, 원단은 재단 전 3~5일간 중력에 맡겨 걸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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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팀을 쏘면 수축해 치수가 틀어지기 때문이다. 탑, 미들, 프레임의 원단은 반드시 같은 롤에서 잘라 쓴다. 롤이 다르면 파랑의 톤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미들 매트리스 작업대에서는 ‘사이드 스티칭’이 진행되고 있었다. 장인이 어른 팔뚝만 한 바늘을 들어 포켓 스프링과 다섯 겹의 천연 소재를 한 번에 관통시킨 뒤 다시 되돌려 꿰맨다. 천연 소재는 사용할수록 가장자리로 쏠리기 때문에 옆면을 스프링에 묶어 두는 것이다. 2000T는 두 줄, 비비더스와 그랜드 비비더스는 네 줄. 마지막은 ‘터프팅’(tufting·술 장식 만들기)이다. 매트리스를 압축한 상태로 긴 바늘에 실을 걸어 위아래를 관통시키고 작은 매듭을 짓는다. 압축을 풀면 매듭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모든 층을 하나로 묶는다. 작업자는 격자 위에 찍힌 색。의 색을 보고 사이즈를 가늠했다. 그 다음 매트리스는 ‘프리 마사지’를 거쳐 출고된다.
매트리스 측면을 손바느질로 마감하는 제작 현장.
◇작업자 컨디션이 좋아야 제품 컨디션도 좋다
비비더스 작업실은 또 다른 세계였다. 지퍼가 없다. 네 면의 모서리를 모두 가는 바늘로 손으로 봉합하고, 겉감 위에 다시 테두리 천을 덧대 두 번 꿰맨다. 그랜드 비비더스는 침대 한 대를 제작하는 데 12명으로 구성된 비비더스 팀이 참여하며, 약 600시간이 소요된다. 안내자가 작업 중인 장인을 가리켰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하루에 한 줄만 꿰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줄은 완벽해야 한다.” 프레임은 북부 스웨덴 소나무다. 해가 짧고 더디게 자라 조직이 치밀하다. 비비더스 계열은 나사를 쓰지 않고 소나무에 참나무 쐐기를 박아 ‘나무와 나무’로 결합한다. 날씨가 더우면 함께 팽창하고 추우면 함께 수축하기 때문에 수십 년이 지나도 삐걱거리지 않는다. 모서리와 손잡이에는 염색하면 작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가오리 가죽을 쓴다. 이 라인의 작업실에서 가장 오래 일한 장인은 올해로 39년째라고 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가볍게 인사했다. 손은 바늘을 놓지 않았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잠은 인간에게, 시계에 태엽을 감는 일과 같다”고 썼다. 해스텐스가 174년 동안 매달린 질문은 결국 그 태엽을 어떻게 감을 것인가인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스텐스는 스스로를 ‘매트리스 회사’라 부르지 않는다. 탑 매트리스, 미들 매트리스, 베드 프레임이 하나의 ‘침대 시스템’이다. 모델에 따라 침대 한 대에 2~3개의 서로 다른 스프링 시스템이 겹겹이 들어가며, 프레임 안에도 1~2개의 스프링 층이 있다. 위쪽은 독립적으로 움직여 옆 사람의 뒤척임을 전달하지 않는 포켓 스프링, 아래쪽은 깊은 지지력을 주는 더 단단한 스프링이다. 스프링의 강도는 철선의 굵기와 간격으로 조절된다. 그 ‘레시피’는 해스텐스에만 납품하는 공급업체와의 비밀이다.
강도는 소프트, 미디엄, 펌, 엑스트라 펌까지 네 단계이며, 일부 상위 모델에서는 엑스트라 소프트도 선택할 수 있다. 한 침대 안에서 왼쪽은 소프트, 오른쪽은 미디엄으로 다르게 주문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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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자는 사람은 어깨와 골반에 압력이 집중되고, 척추가 휘지 않도록 그 두 지。이 적절히 가라앉아야 한다. 해스텐스가 겹겹의 천연 소재와 스프링으로 하려는 일은 결국 이것이다. 누운 사람의 체형이 어떠하든 척추를 수평으로 두는 것. 침대 위아래, 머리와 발 쪽의 구분이 없어 2~4개월에 한 번 뒤집어 쓰도록 권하고, 매트리스를 주기적으로 ‘마사지’하고 ‘조율’해 주는 전담 기술자가 고객의 집을 찾는다.
드리머 침대를 배치한 북유럽의 침실.
◇드리머(drēmər), ‘오늘은 당신의 것’
이번 방문의 중심에는 ‘드리머(drēmər)’가 있었다. 해스텐스가 창립 17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모델로, 그랜드 비비더스를 디자인한 캐나다 출신 건축·인테리어 디자이너 페리스 라파울리(Ferris Rafauli)의 두 번째 협업작이다. 이름은 영어 ‘dreamer’의 발음기호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꿈꾸는 사람, 그리고 마음이 그리는 것을 현실로 불러오는 사람. 1852년 셰핑으로부터 174년을 이어온 여섯 세대의 장인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드리머는 브랜드의 심장인 2000T의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즉, 블루 체크를 처음 입은 그 침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겉옷이 다르다. 격자무늬 안에 해스텐스의 말 모노그램을 짜 넣은 체커보드 원단이 트래디셔널 블루, 블랙 섀도, 내추럴 셰일, 팬텀 차콜 네 가지 색으로 제공된다. 안장 장인의 유산을 기리듯 가죽과 금속 디테일이 더해지고, 발치에는 은도금 황동 플레이트에 “Drēmər, The Day Is Yours(오늘은 당신의 것)”라는 문구와 해스텐스·라파울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무엇보다 눈을 사로잡는 것은 벨벳 헤드보드다. 정교한 파이핑과 코너 패널로 마감된 헤드보드는 침대를 침실의 가구가 아닌 침실의 중심으로 세운다. 셰핑 공장에서 한 대를 만드는 데 200시간 이상이 걸린다. 체형과 체온, 선호 강도에 맞춘 맞춤 제작은 물론 길이와 폭을 주문자에 맞게 바꿀 수도 있다. 처음에 소프트 강도의 드리머에 누웠다. 고백하자면, 처음 몇 초는 당황했다. 한국인 대부분이 그렇듯 단단한 바닥에 익숙한 몸은 ‘쑥’ 들어가는 느낌에 긴장했다. 그런데 가라앉는 것이 멈췄다. 어깨와 골반이 내려간 자리에서 수만 가닥의 말총과 스프링이 밀어 올리는 힘이 느껴졌고, 허리는 떠 있지도 꺾이지도 않았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 더 놀라웠다. 나는 내가 평소 잠을 잘 때 어깨와 턱, 종아리 어딘가에 늘 힘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그 순간 처음 알았다. 침대가 몸을 받쳐 주자 그 힘이 빠져나갔다. 침대가 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몸이 먼저 믿었다. 셰익스피어 희곡 ‘맥베스’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근심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다시 짜 올리는 잠, 고된 노동을 씻는 목욕, 상처 입은 마음의 향유, 위대한 자연의 두 번째 식사, 생의 잔칫상에서 으뜸가는 자양분.”(2막 2장 중 일부) 잠이 ‘헝클어진 실타래를 다시 짜 올리는’ 일이라면, 셰핑의 장인들이 하는 일은 그 실타래를 받칠 베틀을 짓는 일에 가까웠다. 침대가 나를 보호한다는 느낌. 과장이 아니라 그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해스텐스 드리머. 블루 색상 침대에 드리머 전용 네이비 헤드보드를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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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값을 숫자로 계산하는 ‘수면경제’ ‘수면과학’을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수면의 중요성은 이미 오랜 기간 연구돼 왔다. 2016년 미국 랜드(RAND) 연구소는 수면 부족이 미국 경제에서 연간 최대 4110억 달러, GDP의 2.28%를 지운다고 추산했다. 경영컨설팅사 맥킨지는 경영 리더 196명을 조사한 뒤 더 불편한 숫자를 내놓았다. 19시간을 깨어 있은 뇌의 판단력은 혈중알코올농도 0.05%, 한국 기준 면허정지 상태와 같다는 것. 그런데도 리더의 절반 가까이는 수면 부족이 자신의 성과에 영향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내 인생의 중요한 실수는 모두 피곤할 때 저질렀다”고 했다. 그래서 세계의 경영자들은 잠을 경영의 영역으로 옮겼다. 빌 게이츠는 “예리하고 창의적이고 활기찬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이기 때문에 하루 7시간을 잔다”고 했고, 에릭 슈미트 전 알파벳 회장은 “진짜 비밀은,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 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필요할 때마다 잔다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그 。이 해스텐스가 글로벌 경영인과 예술가, 운동선수들의 침실에 들어간 이유다. 2020년 캐나다 래퍼 드레이크가 약 40만 달러(약 5억 3192만원)의 그랜드 비비더스를 주문한 뒤 이 침대에는 대기자 명단이 생겼고, 얀 리데 자신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손목의 수면 추적 기기를 보며 “출장 중보다 집에서 한 시간을 더 잔다”고 했다. 그는 고객들이 “몇 달 뒤 자신이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하기 어려워한다”는 .이 가장 큰 설득의 장벽이라고 했다.
기자가 셰핑에서 깨달은 것은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하루에 30분, 한 시간이라도 더 깊이 잘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 집 한 채 값에 가까운 돈을 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사치가 아니라 간절함이라는 것. 그리고 그 값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계산된다는 것. 드리머의 가격이 한국 홈페이지 기준 최저가 8590만원을 25년(보증일수)으로 나누면 하루에 약 9414원. 1만원이 채 안된다. 커피 두잔 정도나 혹은 커피 한 잔에 ‘두쫀쿠’ ‘버터떡’ 등에 이어 요즘 유행하는 ‘한정선’ 같은 디저트류 하나 정도 가격이다. 커피 한두잔 값으로 사는 여덟 시간. 그 간절함을 174년 동안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받아 온 공장이, 세상에 여기 말고는 없다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편안함을 체험하는 모습.
◇다음 175년에도 이어질 첫 땀
공장을 나서며 올드 다이닝 에어리어를 다시 지났다. 태극기는 그대로 걸려 있었다. 리데는 늘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174년, 거의 175년 된 가족 기업이다. 앞으로 175년 뒤에도 가족 기업일 것이다.” 말총 뭉치 속 고르지 않은 것들을 골라내고, 팔뚝만큼 긴 바들을 다섯 겹의 내장재 속에 정확히 밀어넣어 바느질 하고, 한 줄을 완벽하게 꿰매기 위해 잠시 들어 쉬며, 39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해내는 건 장인 정신 그 이상의 자부심이었다.
1888년 아를의 노란 집에서 반 고흐는 자신의 침실을 그린 뒤 동생 테오에게 썼다. 이 그림이 보는 사람의 머리를, 아니 상상력을 쉬게 해 주어야 한다고. 셰핑의 장인들이 만들고 있는 것도 결국 그런 것이었다. 매일 밤 되돌아 오는 여덟 시간, 꿈과 사랑이 이루어 질 것을 기대하며 블루 체크의 격자 위에서 그들은 오늘도 다음 175년의 첫 땀을 꿰매고 있었다.
동생 부부와 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