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8개월이 지났다. 78년 만의 형사사법체계 대전환으로 중대재해 수사도 변곡。을 맞았다. 지난 2일 검찰청이 폐지되면서 고용노동부가 수사한 사건의 기소 여부는 이제 공소청이 가린다. 법원에서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달 중대재해처벌법 첫 양형기준안을 내놓았다. <매일노동뉴스>가 법 시행 뒤 기소된 235건의 공소장과 1심 판결 167건 일체를 입수해 분석했다. 공소장과 판결문 전수 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중대재해 처벌의 현주소를 진단한다.<편집자>
2022년 3월21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동국제강 포항공장'. 30대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가 천장크레인 브레이크를 교체하다 크레인이 작동하면서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목숨을 잃었다. 설비를 완전히 멈추는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다. 노동청은 당시 공동대표(장세욱 동국제강그룹 부회장과 김연극 전 공동대표) 2명을 모두 경영책임자로 입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지방노동청장까지 나서 장세욱 대표를 입건하려 했지만 김연극 전 공동대표만 송치됐다. 검찰은 서면으로 보강수사 지시를 2~3차례 내렸고, 사고 1년10개월 만인 2024년 1월 두 대표를 모두 불기소했다.
그렇게 죽음이 묻힌 사이 같은 공장에서 또다시 비극이 발생했다. 검찰 불기소 1년9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동국제강 포항공장 안에서 후진하던 트레일러에 하청업체 소속 40대 노동자가 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경찰은 운전자가 후진하던 중 노동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조사했고, 노동부 포항지청도 작업중지 명령을 내린 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섰다. 동국제강그룹 지주사 동국홀딩스는 올해 3월 장세욱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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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사고 당시 동국제강 대표이사를 재판에 넘겼다면 반복된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검찰에서 중대재해를 무혐의로 끝낸 사건은 20%(올해 8월 기준 289건 중 54건)에 달한다.
불기소 뒤 다시 중대재해, 기소는 '전무'
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 불기소 뒤 올해 8월까지 같은 회사(계열사) 사업장에서 다시 사망사고가 기록된 기업은 동국제강을 포함해 최소 6곳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으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CJ대한통운 △현대자동차 △SPC그룹 △매일유업 △동국제강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손솔 진보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2022년 1월27일~2026년 6월30일) 명단과 본지가 확보한 일부 검찰 불기소 이유서, 법무법인 공개사례 등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 불기소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불기소 뒤 다시 사고가 발생했지만, 기소된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코레일은 불기소 뒤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이다. 2022년 11월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 화물열차 입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숨졌지만, 2024년 5월 코레일 사장, 안전보건관리책임자와 법인 모두 불기소됐다. 이후 사망사고가 4건 더 발생했다. 경영책임자가 불기소된 지 3개월 만인 그해 8월 서울 구로역에서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그 뒤에도 올해 8월까지 세 차례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SPC 반복사고, 같은 공장 사고도 2곳
SPC그룹 역시 불기소 이후 사망사고 반복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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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상반신이 끼여 숨진 사고로 노동부가 수사에 착수했지만,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2023년 8월25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불기소 바로 직전인 그해 8월8일에는 샤니 성남 제빵공장에서 50대 여성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여 숨졌다. 하지만 SPL 사고에서 허 회장에 대해 검찰은 '경영책임자'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후 세 번째 사고까지 발생했다. 지난해 5월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상반신이 끼여 사망했다.
CJ대한통운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대표이사가 불기소된 사업장이다. 2022년 5월 CJ대한통운(건설부문)이 시공하는 제주시 관광호텔 신축 공사장에서 굴착기로 세우던 이동식 방음벽이 강풍에 넘어져 60대 노동자가 깔려 숨졌다. 하지만 CJ대한통운 대표이사는 2024년 상반기께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CJ대한통운 사업장에서는 사망사고가 두 차례 발생했다.
현대자동차 또한 반복 사고 기업으로 나타났다. 2022년 3월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상용트럭 품질 검수를 하던 노동자가 차체 위치를 조정하던 중 끼임 사고로 숨졌다. 그러나 검찰은 2023년 11월 현대차 대표이사를 불기소했다. 이후 1년 만인 2024년 11월 울산공장에서 차량 성능을 시험 중이던 남양연구소 연구원 2명과 외부 연구개발업체 직원 등 3명이 사망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배기가스 질식으로 추정됐다.
특히 불기소 이후 '같은 공장'에서 사고가 반복된 기업도 드러났다. 동국제강과 매일유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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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유업 사건의 경우 2022년 4월 평택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기계와 철제 구조물 사이에 끼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해 1월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이사 부회장과 안전관리책임자 등 4명을 모두 불기소했다. 사고는 검찰 불기소 1년7개월 만에 또 일어났다. 올해 8월 밀폐된 연유 저장탱크 안을 청소하던 50대 노동자 2명이 쓰러진 채 발견됐고, 1명은 결국 숨졌다.
사망사고 5건 이상 19곳 중 판결은 1곳, 그마저 무죄
사망사고가 수차례 반복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가 법정에 선 경우는 매우 드물다. 노동부의 '2건 이상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사업장' 명단(2022년~올해 6월)을 보면 154개 기업(사고 470건·사망 503명)이 포함됐다. 하지만 사망사고 2건인 95곳 중 18곳(19%)만 기소됐고, 5건 이상인 19곳에서 기소된 기업은 한화오션 1곳뿐이었다.
그마저 한화오션 대표는 중대산업재해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화오션 사건은 2022년 3월 당시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리프트 와이어를 교체하다 떨어진 철제 소켓에 하청노동자가 맞아 숨진 사고다. 1심은 승강설비 유지보수 공사대금이 2억2천만원이라 법 적용이 유예되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공사라며 경영책임자와 법인 모두 무죄로 봤다. 2심도 동일하게 판단했고,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사망사고 10건 이상인 6곳(대우건설 14건·현대건설 13건·한국전력공사 12건·DL이앤씨·포스코이앤씨·롯데건설 각 10건)은 경영책임자가 단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한 번에 3명 이상 숨진 사고 19건 가운데 기소된 사고도 삼표산업·초석에이치디·아리셀·삼정기업 등 4건에 불과하다. 4명이 숨진 여천NCC 폭발과 7명이 숨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 화재는 경영책임자가 불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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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이행' 불기소 10건, 형식적 절차로 '면죄부'
알려진 불기소 사례는 극히 드물다. 법무부는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거나 사건관계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침해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기소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불기소 기록 열람은 사건관계인으로 제한된다. 이에 본지가 확보한 일부 불기소 이유서와 법무법인 자료로 분석한 결과, 19건의 중대산업재해 불기소 사례가 파악됐다. 대흥알앤티·에쓰오일·현대자동차 전주공장·동국제강·여천NCC·한국철도공사·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CJ대한통운 건설현장 등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리조트·호텔 신축현장도 있다.
검찰이 판단한 불기소 근거에는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이 10건으로 가장 많았다. 중대재해처벌법(4조)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회사 내부에 절차와 기구가 마련돼 있다며 '면죄부'를 줬다. 실제 동국제강 사건에서 검찰은 회사가 "자체 사업장 위험성평가 지침을 통해 유해·위험요인 확인 방법과 위험성평가 시기·절차, 반기별 1회 。검절차 등을 상세하게 규정했다"고 판단했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 화재는 원청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등 의무를 이행했다고 봤다. 집단 급성 간중독을 일으킨 대흥알앤티는 종사자 의견을 듣고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를 마련했으며, 약 9억7천만원의 예산을 배정한 .이 불기소 근거가 됐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다르다. 법원은 위험성평가 절차가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따졌다. 하청노동자가 철근에 맞아 숨진 사고로 기소된 '건륭건설' 전 대표에게 1심은 2023년 10월 "위험성평가표에 위험이 적혀 있었지만 위험성 개선을 위한 절차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평가표에 대해서는 "다른 공사현장에서의 경험 등을 기초로 형식적으로만 작성한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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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소된 대흥알앤티와 같은 업체 세척제로 노동자들이 독성 간염에 걸린 두성산업 대표는 징역 1년·집행유예 3년이 확정되기도 했다.
'사망사고 되풀이' 검찰이 입증, 공소청은 달라질까
'깜깜이' 불기소와 미온적인 수사로 인해 사고를 예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무 이행'의 기준이 공개되지 않으면 검찰 판단이 맞았는지 검증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사고 원인을 담은 노동부 재해조사보고서는 불기소 사건도 공개될 길이 열렸다. 지난 6월 시행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내사종결·불기소 사건도 공개할 수 있다. 노동부는 홈페이지에 재해조사보고서 117건을 추가 공개했다.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이재명 정부는 사망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대기업들에 대해 손을 놓고 있거나 불기소하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수준으로, 엄정하게 처벌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자 하는 입법 취지를 사법기관들이 앞장서 무너뜨리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신하나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도 "불기소 처분을 받은 기업에서 사망사고가 되풀이됐다는 것은 검찰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현실이 증명한 것"이라며 "불기소가 기업에 사실상 면죄부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조재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조안전 대표)는 "법 도입 단계에서 논의된 인과관계 추정 규정, 대주주의 경영참여시 경영책임자 의제 규정 신설 등 법의 완결성을 높이는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법은 사문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소청이 지난 2일부터 중대재해 기소를 담당하면서 변화가 생길지도 관심사다. 김상은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노동부 팀장과 과장이 노동감독관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공소청 검사는 노동감독관의 부당한 불송치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를 통해 중대재해 발생에 대해 처벌하고, 예방할 수 있는 체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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