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보도 '마산 한일합섬 기억 찾기-언니야 보고 싶다'는 9회에 걸쳐 한일합성섬유주식회사에서 일하고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에서 공부한 이들을 찾고 그들의 10대 추억을 기록했다. 한일여고는 건실하게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지만, 8만 9000여 평을 채웠던 한일합섬은 2006년에 마지막 굴뚝이 사라지며 이제 흔적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그 안에서 일하며 울고 웃었던 이들의 기억이라면 지역사, 노동사, 산업사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하는 풍부한 자원이 될 것이라 여겼다.
용마산 공원에서 현충일 기념식 때 한일여실고 합창부가 가서 노래를 불렀다. 이 안에 박성숙 언니야도 있다. /박성숙
5월 11일 <경남도민일보> 창간 기념일에 맞춰 '마산 한일합섬 기억 찾기-언니야 보고 싶다' 1편을 실었다. 경남도민일보 본사와 한일합섬 이전 부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정도로 가깝다. 올해는 한일합섬 마지막 굴뚝이 스러진지 20년이 되는 해다. 영화 <다시 부르는 소녀들의 이름>(2025, 장가영·이기혜·김진 감독)으로 한일합섬·한일여실고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기며, 앞선 연구와 기록 작업을 뒤따라가 보고자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첫 편에서 전북 남원에서 온 박금자 언니야가 방대한 기억을 풀어내며 시작했다. 이어 한일합섬·한일여실고 역사와 연구 내용을 다뤘다. 닿기 어려울 것 같았던 언니야들을 지역 안팎에서 만나면서 그들의 기억을 기록했다.
언니야들은 자기 삶에 긍지를 느끼며 살아갔다. 그러면서도 힘들고 잠이 쏟아지던 그 당시를 담담하게 떠올려왔다. 그 안에서 언니야들 삶과 성격 등에 공통.도 차이。도 보였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앞으로 지역에 남은 과제를 짚어본다.
언니야 7명을 만나다
한일합섬을 다녔거나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지금의 한일여자고등학교)를 다녔던 이를 '언니야'라고 칭했다. 이번 인터뷰에 나서준 언니야는 7명이었다.
언니야들을 만날 때 실제로는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기사에서 이들을 '언니야'라고 불렀던 이유는 한일합섬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이 서로를 불렀던 호칭이었기 때문이다. 1편에 나왔던 금자 언니야 말로는 공장에서 부르던 호칭과 교실에서 부르는 호칭이 달랐단다. 나이가 한참 지나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교실에서는 나이 상관없이 친구로 어울리고, 공장에 들어갔을 때는 '언니'라고 불렸단다.
금자 언니야를 인터뷰하고 난 뒤 이들을 '언니야'라고 부르고자 했다
바다이야기 고래
. 경남 지역어는 아니지만 '~야'를 붙여 정감있게 했다. 이들이 함께 일하고 공부한 시간을 추측해봤을 때 따뜻하고 정감 있을거라 여겼다.
이들을 '언니'라고 부르는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다.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가 2015년에 낸 구술자료집은 <여성노동자, 살아있는 역사:언니들에게 듣는다>였다. 이 구술자료집에는 한일여실고 출신인 노동자, 마산자유무역지구에서 일했던 노동자,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의 삶이 구술로 담겨있다.
이와 별개로 한일합섬 당시 기록이 풍부하지 않다는 걸 알고 지역에서 다양한 연구를 이어갔다. 이는 4편에서 다뤘다. 앞선 기록이 없었다면 이들을 감히 '언니야'라 부르며 지면에 불러세울 힘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언니야 7명 중 5명은 1960년대생이었다. 세 번째에 등장했던 신주현 언니야는 2006년 한일전산여고를 졸업했다. 여덟 번째에 나오는 공수정 언니야는 성인이 되고 나서 합일합섬에서 일한 경우였다.
같지만 다른, 이중성으로 연결되는 언니야들
신주현 언니야가 자기 연구에서 밝혔듯, 언니야들은 모두 이중적인 정체성과 처지를 밝혔다. 학생이면서 노동자 정체성을 동시에 지녔다는 의미다. 공부를 시켜줘서 감사한 마음이 있지만, 일이 너무 힘들거나 잠이 와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토로했다. 간혹 일이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언니야들이 있었지만, 그때 일화를 얘기하면 결국 생산량을 맞춰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거나 공장에서 나는 냄새나 먼지로 고생했던 일을 언급하면서 고통을 말했다. 무엇보다도 잠, 졸음이 언니들을 괴롭혔다.
"공장에서 일할 때 쉬는 시간에 잤다. 변기 위에서 쪽잠을 잤다. 솜뭉치 또는 카펫 사이에서 잠시 잠을 청했다."
3교대에 주경야독이라니, 시간에 쫓기며 살았던 언니야들이다. 한창 성장할 시기였던 언니야들은 공장에서 야밤에 일해야 했다. 그들은 실타래 틈에서, 변기에 뚜껑을 덮어 그 위에 쪼그려 앉아서, 종이상자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몸을 뉘였다. 없는 살림, 배고픔보다도 참을 수 없이 밀려오는 잠이 언니야들을 괴롭게 했다.
이런 언니야들이 함께했던 친구들을 더 오래 기억하고 찾고자 하는 이유는 같이 여가를 즐긴 추억이 있어서겠다. 이러한 .도 이중적인 정체성을 드러나게 한다. 언니야들이 공장에서 일한 기억은 대체로 단조로웠다
바다이야기릴게임예시
. 사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억했다. 인터뷰한 언니야 중에서는 압착·끼임 사고 경험이 없는 언니야들이지만 기절해서 병원에 가거나, 눈이 아파서 안경을 써야 했던 고통에 대한 기억을 꺼냈다. 또 다른 과에서 누군가가 다치고 도망쳤다거나 하는 소문이 있었다고 했다.
한일합섬이 가장 부흥했을 때는 1년에 1000명, 혹은 2000여 명의 학생이면서 여공인 언니야들이 같이 지냈다. 그들은 나고 자란 지역, 가족관계, 성격, 눈물을 흘리는 이유까지 다 달랐다. 저마다의 사정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했을까.
1987년부터 1990년까지 마산 한일합섬에서 일하고 한일여실고에서 공부했던 이은경 언니야가 당시에 찍은 사진들. /이은경
만나지 못한 언니야들
이 기획의 토대였던 창원 빛공방의 영화 <다시 부르는 소녀들의 이름>에서 인터뷰한 한 언니야는 "마산에 한일여실고 출신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도 인터뷰를 하기에 쉽지 않을 거라 여겼다. 5명 정도를 목표로 삼았는데, 그보다 많은 7명을 만났다. 목표치보다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이는 아주 일부분이라는 걸 안다.
이번 기획을 빠짐없이 챙겨봤다는 박미영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부대표는 "한일합섬은 공장, 일터로서의 기억을 넘어서 그들에게는 고향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애틋하게 여기는 언니야들이 있었다"라면서 "인터뷰를 거절했거나, 하지 않은 언니야들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금의 한일여고를 졸업한 이가 4만 명을 넘어선다. 이들 모두가 한일합섬에서 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 대상자 7명을 많다고 보긴 어려운 이유다.
김해, 경기 수원, 대구에도 한일여실고가 있었다. 김해에는 한일여고가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수원·대구는 학교 명칭이 바뀌고, 학교법인이 바뀌기도 했다. 특히 수원은 한일합섬이 사라지고 그 위에 아파트가 들어선 모양새가 마산과 닮아 있었다. 이런 연결성을 짚기 위해서는 수원에서 일하고 공부했던 언니야들을 만났어야 했다.
또 만나지 못한 이들이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언니야들은 아니다. 한일합섬 노동자를 만났거나, 한일합섬을 소재로 삼아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이들이 있다. '2024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현시원 예술감독이 성산아트홀 전시동 내부, 기둥을 천으로 휘감았다. 천에서는 한일합섬에서 매일 들렸을 재봉틀, 봉제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심어뒀다.
부산의 대안공간 '공간 힘'의 큐레이터 김선영 씨는 마산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기록하는 전시를 2022년부터 내놓았다
골드몽
. 전시 <끈적이는 바닥Ⅰ·Ⅱ·Ⅲ>이 그랬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일했던 언니들 전시로 기록한 <고깔과 진달래>도 있었다. 그가 기획했던 전시 내용과 의미는 올해 1월 국립창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산업도시연구단이 펴낸 <산업도시의 여성노동과 로컬리티>에 실렸다.
창원에서 활동하는 한혜림 미술작가는 2025년에 전시 <포시라운 사람>을 선보였다. 마산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기억을 다뤘다. 한 작가는 '포시라움'을 호화로운 연약함이 아니라 서로 챙기고 공감하며 버텨내게 했던 힘이라고 정의했다.
한일여실고 교정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금자언니(윗줄 오른쪽 두번째). /박금자
언니야 또 보이시더예
인터뷰에 수락했던 언니야들은 공통적으로 흥이 많았다. 활달하고 당당했다. 무엇보다 기억력이 좋았다. 기억력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언니야들은 인터뷰하면서 처음 꺼내보는 기억이기에 오히려 생생하다고 말해줬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 잊고 싶고 숨기고 싶은 과거로만 여겼다면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웠을 테다. 언니야들은 한일합섬에서 일하고, 한일여실고에서 일했던 자신과 과거를 숨기지 않았다. 드러내고 나서도 후회하지 않았다. 언니야들은 기사가 나간 뒤로 다른 이들과 연결되고 소통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잘 살아온 과거의 자신을 만나기도 했다.
언니야와 독자들의 만족과 별개로 남은 과제가 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보고 싶은 친구를 부르지 않는 언니야들의 숨은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박 부대표는 "과거 여성 노동자는 '공순이'라 낮춰 불렸다. 그러한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많은 언니야를 불러일으키지 못한 게 아닌가"라면서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도 자녀에게 피해라도 갈까 우려해 목소리 내기를 꺼리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은 과거에 노동했던 경험을 무용담처럼 말하며 성장과 서사를 자랑하듯, 여성 노동자의 서사와 목소리도 더욱 커져야 여성 노동에 긍지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니, 언니야들이 보고 싶다고 한 주체는 열일곱, 열여덟의 나일지도 모르겠다. 자기의 노동·학업 경험을 말하지 않은 4만 명 언니야들이 남아 있다. 또 다른 박금자(57)·신주현(37)·박성숙(62)·이은경(56)·김경옥(60)·공수정(80)·김신순(65) 언니야들이 나오길 바란다. 그들이 언젠가, 그 누군가에게라도 자기 이야기를 여실없이 드러내길 바란다. 그게 '마산 한일합섬 기억찾기-언니야 보고싶다'의 궁극적인 취지가 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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