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해외 소비자들이 왜 K-뷰티에 열광하는지 이유를 찾아보고, K뷰티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글로벌 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성도 함께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말>
▲ 한국문화원 K-뷰티 행사 서울살롱에서 체험의 순간.
ⓒ 주독일한국문화원
재작년이었던 것 같다. 베를린 한국 문화원에 갔더니 한국 화장품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문화원에서 화장품 전시를? 이것도 한국 문화에 속하나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전시용 탁자 위에 화장품을 예쁘게 진열해 놓았는데 그 옆에는 '10단계 루틴'이라는 안내 문구가 쓰여 있었다. 10단계! 매일 아침저녁으로 10개의 화장품을 찍어 바르라고? 화장품 회사에서 화장품 소비를 조장하기 위해 만들어 낸 새로운 신화라 여기고 관심을 껐다.
그러다 요즘 K-뷰티에 대한 특집 기사를 쓰기 위해 조사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평행 세계라고 하던가. 베를린에 K-뷰티가 이 정도로 확산한 것을 몰랐다. 두글라스라는 이름의 전통적인 화장품 매장에 한국 상품이 샤넬이며 랑콤과 나란히 진열된 것을 보았고 대형 할인매장인 'TK Maxx'에 들어갔다가 한국 화장품만 모아 놓은 매대를 발견했다.
세상에! 그뿐이 아니다. 화려한 프리드리히 가에는 K-뷰티 전문 매장도 들어섰다. 독일 전역에 모두 13개소의 매장이 있다고 한다. 고백하건대 취재용이라는 핑계로 화장품 몇 개를 새로 샀다. 아름다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건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요즘은 늙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었으므로 불혹과 지천명을 넘어 이순이 되어도 아름다움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럴까? 문득 우리는 왜 아름다움에 이토록 연연하는지 궁금해졌다.
움베르토 에코가 예술사 책을 쓰면서 제목을 <아름다움의 역사>라고 붙인 바 있다. 그건 아름다움의 기준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사실 외에 현대의 매체, 영화나 텔레비전, 잡지 화보와 사진에 비친 '아름다움'도 함께 살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과거엔 화가, 조각가들이 아름다움을 정의했지만 현대에서는 예술의 장르에 속하지 않는 매체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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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현대를 함께 다루기 위해서는 예술사라 하지 않고 아름다움의 역사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모니카 벨루치를 아프로디테의 족보에, 조지 클루니를 아도니스의 반열에 세웠다. 움베르토 에코가 아직 살아 있다면 K-팝의 아이돌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지 않았을까?
K-뷰티라는 문화 현상
▲ 이젠 베를린의 화장품 매장마다 한국 제품이 반드시 진열되어 있다.
ⓒ 고정희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한 페이크 (fake) 기사와 마주쳤다. 얼핏 보면 K-뷰티 이야기 같은데 실은 독일 제품을 홍보하면서 그걸 쓰면 '한국 여성들처럼 20년은 젊어 보인다'라고 선전하는 내용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알고 보니 K-뷰티는 K-팝과 드라마, 소셜미디어가 함께 만들어 낸 거대한 문화 현상이었다. 아이돌과 배우의 얼굴에서 시작된 관심은 그들이 사용하는 화장품과 피부 관리법으로 옮겨 갔고, 유튜브와 틱톡은 이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일상의 의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무엇을 어떤 순서로 바르고, 어떤 성분이 어느 피부에 좋은지 설명하는 영상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여기에는 분명 '아름다움의 민주화'라 부를 만한 측면이 있다. 아름다움은 이제 미모를 타고난 사람이나 값비싼 미용실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교적 저렴한 제품과 약간의 지식, 매일의 정성만 있으면 누구나 더 맑고 건강한 피부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화장으로 전혀 다른 얼굴을 만드는 것보다 본래의 피부를 잘 돌보는 데 중.을 둔다는 。도 매력적이다. 아름다움은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새로운 미덕이 등장한 것이다. 좋은 일이다.
K-뷰티 현상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다. 2025년 인디애나대학교에 제출된 연구 논문에서는 틱톡의 K-뷰티 영상 120편을 분석했다. 그 안에서 수분 공급과 촉촉한 피부, 노화 방지, 유리알 피부, 자연스러운 화장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었다. K-뷰티는 서구 미용 문화의 짙은 색조 화장과 윤곽 보정 대신 피부의 건강과 생기, 자연스러움을 앞세우는 미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냈다.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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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돌봄인가 자기 감시인가
▲ 베를린 백화.에 진열된 Korean Skincare 상품.
ⓒ 고정희
그런데 누구나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말은 과연 해방의 선언이기만 할까? 타고난 미모가 아니라 관리의 결과라면, 아름답지 못한 책임도 이젠 자신에게 돌아간다. 피부가 좋지 않은 것은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노화를 미리 방지하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이 민주화되는 것과 동시에 아름다움에 대한 '의무'도 민주화된 것이다.
돌봄과 강박 사이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피부는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결。을 드러낸다. 모공과 잡티, 잔주름과 처짐, 피부색의 미세한 차이까지 모두 관리의 대상이 된다. 처음에는 나를 돌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부터 끊임없이 나를 관찰하고 교정하는 노동으로 변한다. 자기 돌봄이 자기 감시가 된다.
2020년 룬드대학교의 연구원 마라스카는 한국 화장품 광고가 품고 있는 모순을 분석했다. 자기 돌봄과 자신감, 개성과 자아실현을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젊어 보이는', '완벽한', '새로워진' 피부를 기준으로 내세워 지금의 얼굴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불안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강박에 가까워졌다. 피부가 좋아야 하고, 피곤해 보여서는 안 되며,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여야 한다. 잘 관리한 얼굴은 자기 절제와 성실함의 증거처럼 칭찬 받지만, 주름과 잡티는 방치와 게으름의 결과처럼 취급된다. 건강한 피부를 원하는 것과 나이 든 흔적을 모두 지워야 한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피부색의 문제도 있다. K-뷰티는 밝은색의 피부를 이상형으로 제시한다. '톤업'이라는 표현은 얼마나 교묘한가. 피부를 하얗게 만든다고 하면 거부감이 들지만, 톤을 밝혀 준다고 하면 건강하고 산뜻하게 들린다. 그러나 정작 제품은 다양한 피부톤을 포괄하지 못한다. K-뷰티가 세계 문화가 되려면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도달해야 하지 않을까?
상품은 어떻게 문화가 될까?
▲ 서울살롱 한국 문화원에서 열린 K뷰티 행사 '서울 살롱'에 참여한 젊은 여성들이 장미꽃 벽화 앞에서 행복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주독일한국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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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미를 전매했던 도시, 로마의 사피엔차 대학에서 기호학을 강의하는 비안카 테라차노 교수는 몇 년째 K-뷰티 분석을 업으로 삼은 듯하다. 이미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K-드라마에서 의상과 미용 제품이 소품이 아니라 서사의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세계의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한국산 크림 한 통만이 아니다. 상품과 이야기, 스타와 생활방식을 함께 구매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K-뷰티의 문화적 힘일 것이다.
베를린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 K-뷰티에 관해 물어보니 모두가 자랑스러워했다. 한때 외국 화장품을 선망하던 한국이 이제 세계의 미용 기준을 바꾸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 역시 한국 제품이 독일 상.의 좋은 자리를 차지한 모습을 보면 반갑다. 그런데 한결같이 좋아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조금 걱정스럽다. 걱정도 팔자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의 성공이 모두의 자랑이 되는 순간에는 그 성공이 만들어 낸 그늘을 말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미가 선이 되고 사회적 규범으로 인지되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는 어떤 한국을 보여주는가?
▲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개최한 세종문화아카데미 프로그램 "K-뷰티 워크숍". 아모레퍼시픽이 협찬했다.
ⓒ 주독일한국문화원
한국 문화원에서 화장품 전시를 담당했던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 뒤에도 K-뷰티 강습과 관련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은 분야를 통해 한국을 소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름다움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식 역시 분명 문화의 일부다.
그러나 세계가 자발적으로 K-뷰티에 열광하는 것과 한국의 공공 문화기관이 그것을 대표적인 한국 문화로 선택해 보여주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후자에는 무엇을 한국 문화로 내세울 것인지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문화 체험 행사를 넘어 특정한 미의 기준을 공적으로 승인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K-뷰티를 소개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의 문화라면,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와 연령차별, 획일적인 피부색까지, 즉 그 그늘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K-팝과 드라마, 화장품 산업은 이제 국가기관이 애써 홍보하지 않아도 세계 시장을 움직일 만큼 성장했다. 그렇다면 문화원은 시장의 힘만으로는 알려지기 어려운 한국의 역사와 사상, 문학과 예술, 지역문화와 일상의 지혜를 보여주는 역할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의 결과라면,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