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4일 프랑스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7시간 반쯤 남긴 일요일 아침, 트랙을 돌던 주황색 자동차가 갑자기 덜컹거리다 멈춰 서기 시작했다. 밤사이 4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17번 차가 연석을 세게 밟아 서스펜션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피트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라이버들은 고개를 숙였고 몇몇 엔지니어들은 눈물을 훔쳤다.
칼로 썬 듯 날렵한 두 줄 헤드라이트, 화산에서 막 분출한 것 같은 용암의 색, 길게 뻗은 차체를 뽐내던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팀 17번 차가 처음 출전한 르망 24시 대회에서 불의의 사고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제네시스에는 아직 달리고 있는 자동차가 한 대 더 있었다. 밤사이 3번이나 시동이 꺼졌던 19번 차는 372랩(주행 바퀴)을 돌고 기어이 완주에 성공했다. 비록 13위였지만 르망 24시에 처음 나선 한국 자동차가 결승선을 들어오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나는 자동차 경주 마니아는 아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르망 24시에 출전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누리호가 우주로 올라가고 하늘로 비상하는 국산 전투기 KF-21을 보던 감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누구는 100년이 넘는 르망 24시에 한국 자동차가 이제야 등장한 것이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팀의 출전은 서구권과 일본 이외의 완성차 제조사가 독자 머신으로 그들만의 잔치에 균열을 낸 최초의 사건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 사람들이 현대자동차를 혼다로 헷갈려 구매한다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떠돌았다. 삼류 브랜드로 취급받던 한국 자동차가 처음 출전한 최고의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완주까지 했다는데, 한국인으로서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렇게 며칠 동안 제네시스 레이싱팀의 완주 영상을 보던 중, 문득 한 영화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2019년 극장에서 본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포드 v 페라리>였다.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경주 연출과 맷 데이먼, 크리스천 베일의 명연기에도 당시에는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영화였다. 아마,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만의' 역사였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극한 레이스, 르망 24시
▲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르망 24시(24 Heures du Mans)는 프랑스 서북부, 사르트주 르망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경주 대회다. 또 다른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로 뽑히는 F1(Formula1)이 정해진 바퀴 수를 가장 빨리 도달하는 스프린트 레이스(sprint race)라면, 이 대회는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가장 멀리 달리는 내구 레이스(endurance race)다.
사르트 서킷은 경주용 서킷과 시골 도로를 연결해 총 13.626km에 달한다. 가장 유명한 뮬산 구간은 무려 직선으로 6km다. 토요일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일요일 오후 4시까지 24시간 동안 가장 많은 거리를 달린 자동차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1923년 시작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르망 24시는 극한의 마찰과 진동, 열 관리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 기술의 시험대 역할이 되어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기능이 이곳 르망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 대회는 완주 자체만으로도 브랜드의 기술력과 가치를 인정받곤 한다.
포드 v 페라리
▲ <포드V페라리>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포드 v 페라리>는 1966년 미국의 포드가 르망 24시에서 이탈리아 페라리를 꺾기까지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1908년 대량 생산을 통해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 포드는 미국 시장에서 GM에 뒤지며 만년 2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돌파구를 찾던 포드는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모터스포츠에 눈을 돌린다. 마침 유럽 레이싱의 황제 페라리가 자금난에 허덕인다는 소식을 들은 포드 수뇌부는 인수를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다.
엔초 페라리는 자신의 회사가 포드로 넘어가는 순간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알고 있었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가 제시한 조건은 레이싱 팀에 관해서는 독자적 권한을 달라는 것. 하지만 포드는 그 의미를 몰랐던지, 엔초의 제안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협상의 결말은 처참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무시 당했다고 느낀 엔초 페라리는 헨리 포드 2세를 '뚱뚱하고 볼품없는 공장장'이라고 독설하며 협상을 파기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국민 자동차 기업 피아트에게 자신의 지분을 넘긴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헨리 포드 2세는 페라리를 꺾고자 르망 24시 참가를 결정했다. 그러나 1960년부터 4년 연속 르망 24시 챔피언을 달성한 페라리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런 페라리를 이기기 위해서는 대회 성격을 이해하고 엔지니어링에도 탁월한 인물이 필요했다.
샴페인은 아니지만
캐럴 셸비(맷 데이먼). 1959년 애스턴 마틴을 타고 르망 24시 우승을 차지했지만 심장 문제로 은퇴한 그는 자동차 튜닝 회사 '셸비 아메리칸'을 설립한 인물이었다. 1964년 포드는 레이싱 전문가이자 엔지니어인 셸비를 영입한 후, 본격적인 차량 개발에 들어갔다.
포드에도 엔지니어들이 수두룩했지만, 경주용 머신을 위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오감으로 기계의 영혼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 자동차가 건네는 모든 소리를 읽어내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 다행히 셸비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었다. 자동차 성능에 관한 한 타협을 모르는 유일한 남자,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였다.
▲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소통에 서툴고 다혈질적인 성격 탓에 켄 마일스는 최고의 드라이버이자 엔지니어임에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셸비는 켄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다. 둘은 성격이 달랐지만 자동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찰떡궁합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GT40 Mk2는 포드의 자본과 켄 마일스의 통찰이 창조한 괴물이었다. 켄과 셸비는 GT40이라면 페라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1965년, 프랑스로 떠날 채비를 하던 켄 마일스에게 출전 불가라는 통보가 날아왔다. 경영진은 그의 독단적인 성격이 회사에 흠이 될까 봐 걱정했다. 포드는 우승도 중요했지만, 미디어에 비칠 이미지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모두가 프랑스로 떠난 밤, 창고에 홀로 남아 라디오를 통해 경기 소식을 듣던 켄에게 아내 몰리가 찾아온다. 그녀의 손에는 맥주가 들려 있었다. 몰리는 기름 때가 묻은 켄의 손에 맥주 한 병을 건네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샴페인은 아니지만, 거품은 있어."
사실 이 장면은 감독의 상상이다. 켄 마일스는 1965년 르망 24시에 출전했지만 기어 박스 고장으로 중도 탈락했다. 그럼에도 나는 맥주가 등장한 이 장면에 감독의 진짜 메시지가 녹아 있다고 믿는다.
모터스포츠 시상대에서 샴페인을 흔들어 터뜨리는 문화가 탄생한 것은 1967년 르망 24시부터였다. 이 대회의 우승자 댄 거니가 포디움에서 샴페인을 뿌린 후, 이 세리머니는 모든 스포츠에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감독은 '샴페인 세레머니'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1965년 창고에서 아내의 입을 빌려 샴페인의 대척.으로 맥주를 드러냈다. 맥주의 향미는 샴페인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그 거품은 더 길고 오랫동안 남는다.
몰리는 켄 마일스가 르망 24시에 가지 못했지만, 당신이 만든 차가 르망을 달리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승자라고, 그리고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건넨 맥주는 누군가의 꿈을 축복하는 세리머니이자 응원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항상 빠른 결과를 바라지만, 인생에는 시간의 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묵묵히, 그냥 하는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포드는 무제한의 자본을 투자해 괴물 같은 차를 만들었지만, 이를 다룰 수 있는 힘을 간과하고 있었다. 수만 개의 부품이 결합되어 있는 기계도 기분을 어루만져 주고 한계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있는 게 아닐까.
1966년, 르망
영화 속 켄 마일스 없이 출전한 1965년 포드는 실패했다. GT40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경주를 펼친 선수들은 레이스 중도에 모두 하차하고 말았다. 이듬해 우승을 위해 셸비는 경영진에게 켄 마일스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르망 24시 준비와 운영에 관한 전권을 가져온다.
그렇게 시작된 1966년 르망 24시. 포드는 지난해 경험을 바탕으로 라이벌을 하나씩 제쳐간다. 그리고 드디어 펼쳐지는 페라리와의 한판 승부. 뮬산 코스에 도달하자 켄 마일스는 자신이 다듬은 차를 어루만지며 팀 내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7000rpm에 도달하면서 페라리를 저 멀리 。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켄 마일스의 우승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순간, 포드 경영진은 셸비에게 포드 자동차 세 대가 동시에 들어오도록 하라는, 대회 사상 듣지도 보지도 못한 통보를 내린다. 모터스포츠의 순수성과 전통을 무시한, 오로지 마케팅 성과만 바라본 촌극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르망 24시 우승을 목전에 둔 켄 마일스. 하지만 그는 셸비의 지시를 받고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그리곤 뒤이어 합류한 포드의 다른 드라이버와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모두가 켄 마일스의 우승을 축하하려는 순간, 주최 측은 트랙 위에 있는 모든 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가장 멀리 달린 차가 우승한다는 원칙에 따라, 켄 마일스가 아니라 맥라렌이 우승자라는 발표였다. 맥라렌은 켄 마일스보다 뒤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조금 더 멀리 달렸다는 논거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포드 경영진의 어처구니없는 결정으로 켄 마일스는 우승을 날렸지만, 그는 셸비와 트랙을 걸으며 GT40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샴페인의 거품에 환호하기보다 잔 위에 오랫동안 남는 맥주의 거품을 선택한 것이리라. 어쩌면 오래 달려야 하는 르망 24시에는 맥주 축포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별이 된 전설
▲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966년 8월, 르망 24시에서 포드가 페라리를 무릎 꿇린 후 두 달이 지난 시., 포드의 차세대 레이싱 자동차를 테스트하던 캘리포니아 트랙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자신이 개발한 자동차로 우승을 꿈꾸던 켄 마일스는 그렇게 별이 되며 세상을 떠났다. 포드는 그가 시험하던 차를 발전시킨 Mk IV로 1967년 르망을 다시 제패했고, 1969년까지 4연패를 이어갔다.
누구보다 자동차를 사랑했고 자신의 일에 헌신했던 켄 마일스는 2001년 미국 모터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포드는 영화 개봉 직후, GT350 헤리티지 에디션을 내놓으며 켄 마일스의 업적을 기렸다.
우리나라 현대자동차는 포드가 켄 마일스의 유산으로 르망 24시를 제패하던 1967년 설립되었다. 첫 차는 포드의 부품을 단순 조립해서 내놓았던 코티나였다.
1980~1990년대 미국 코미디언들이 굴러가는 게 기적이라며 비웃던 현대자동차는 포드가 페라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지 정확히 60년 후, 독자 모델을 내고 같은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3위란 자리가 부족할지 몰라도, 나에겐 큰 울림이 전달되던 순간이었다.
맥주가 잔 위에 남기는 레이싱(Lacing)은 24시간 동안 타이어가 트랙 위를 짓이기는 자동차의 레이싱(Racing)과 닮았다. 누군가의 진심이 닮긴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026년 제네시스 마그마는 샴페인 축포를 터트리진 못했지만, 우리 가슴 속에 멋진 레이싱을 아로새겼다. 마치 1966년 켄 마일스처럼.
매 순간, 자신의 일에 헌신을 다하는 모두를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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